
'좀비딸'은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이 작품은 좀비 소재의 가족 영화로, 깊은 철학적 성찰과 윤리적 고뇌를 다룬다. 극 중 아버지는 좀비가 된 딸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며, 줄거리를 통해 죽음의 공포보다 훨씬 더 무거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디까지가 인간인지, 가족의 정의는 무엇인지, 사회와 다수의 이익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는 그 생명이 위협적인 존재일 때도 유효한지 등 작품을 본 관객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좀비딸'이 제기하는 세 가지 주요한 윤리적인 질문인 '생명', '정체성', '개인의 선택'을 통해, 인간성과 도덕 판단에 대한 성찰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영화 좀비딸의 윤리적 질문, 생명
'좀비딸'에서 가장 핵심적인 갈등 구조는 생명에 대한 아버지의 윤리적인 선택이다. 딸이 좀비로 변한 후에도 아버지는 그녀를 죽이지 않고 보호하려 한다. 그는 딸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의 존재를 '살아있는 가족'으로 간주한다. 영화 속 아버지는 가족과 생존 본능 사이에서 가족을 선택한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한 가지 중요한 윤리적 질문과 마주한다. '우리는 언제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은 단지 공포 장르 속 설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로 말기 환자, 식물인간, 중증 치매환자, 심지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가족 구성원을 두고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보호의 의무는 어디까지인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나의 안전이나 삶을 망가뜨리는 위험성보다 우선되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선택은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는 딸을 숨기고, 주변에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삶마저 포기한다. 하지만 관객은 그 결정이 얼마나 본능적이고 인간적인지 점차 이해하게 된다. 도덕철학에서 칸트는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딸을 '위험한 존재'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대하며, 도구화하지 않는다. 생존 본능과 윤리, 그리고 가족애의 교차점에서 그는 스스로를 희생하며, 인간성의 마지막 선을 지키려 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평소 너무 쉽게 판단하던 윤리적 잣대의 허약함을 드러낸다. 정말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항상 정의로운 것인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관객이 이 작품 속 주인공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말이다.
정체성과 존재의 가치
'생명'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에 앞서서, 이 작품은 '좀비'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대립시킨다. 다른 작품을 살펴보면 '좀비'라는 존재는 전통적으로 인간과는 구분되는 무의식적이고 파괴적인 대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좀비딸'은 이 경계를 무너뜨린다. 딸은 인간처럼 감정을 보이고, 아버지를 알아보며, 가끔은 공격성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그렇다면 그녀는 인간인지, 아니면 단순한 괴물인지' 고민한다. 이 문제는 철학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묻는 깊은 윤리적 질문이다. 과거에 철학자들은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논의해 왔다. 그에 여러 가지 답이 있다. 사고능력, 언어, 감정, 사회적 관계 등이다. 이 작품은 '만약 좀비 상태에서도 누군가를 인식하고, 슬픔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여전히 인간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지만, 근현대 윤리학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피터 싱어는 '고통의 능력'을 윤리적 판단의 중심에 두었다. 그의 윤리적 잣대대로라면 좀비딸의 딸은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여전히 '존엄한 존재'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유사한 문제를 인공지능, 식물인간, 노인성 질환자들에게서도 마주한다. 그들의 인간성이 손상되었을 때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기능을 기준으로 인간성을 재단하는 사회는 과연 도덕적인지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영화 '좀비딸'은 이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지만,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해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물음은 단순히 영화관을 떠나는 순간에도 우리 곁을 따라붙는다.
관계의 윤리와 개인의 선택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윤리적 한계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가족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그 가족이 사회의 법과 질서, 공동체의 안정성을 해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영화는 관객들에게 의문을 제시한다. 영화 속 아버지는 딸을 숨긴다. 그 행동은 사회적으로는 위험한 행동이고, 때로는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때 영화는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 윤리 기준'의 충돌을 다룬다.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와 사랑을 바탕으로, '가족은 정말 어떤 윤리적 기준보다 우선해야 하는지' 묻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버지가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 어떤 변명보다도 인간적이고, 솔직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애는 결국 감정과 본능의 복합체다. 그것은 논리나 이성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의 복잡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족은 때로는 윤리를 넘어서는 존재이며,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이는 정의와 도덕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윤리적 절대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좀비딸'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좀비딸은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복잡한 윤리적 갈등인 가족, 존재, 생명, 도덕적 판단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영화 속 아버지처럼 극한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윤리적 회색지대와 마주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진지한 고민과 선택의 책임이다. '좀비딸'은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단순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